국가인권위는 지난 22일 외국인력정책위원회가 제시한‘고용허가제도 운영체계 개선방안' 내용 중 그동안 인권단체들이 문제 제기해 온 '산업연수생제도의 연수추천단체를 고용허가제 업무대행기관으로 선정하는 문제'와 관련해 입장을 밝혔다.
  
  인권위는 국무총리에게 "고용허가제도 도입취지상 외국인노동자의 국내도입 창구는 현행과 마찬가지로 한국산업인력공단으로 일원화한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어 인권위는 "사용자 위임에 의한 다른 대행기관의 현지 면접,선발 대행업무 또한 불허할 것"과 "향후 관계 부처간 협의를 통해 대행기관의 업무내용 선정 시, 위탁이 가능한 범위를 그 성격에 따라 명확히 구분하여 선정할 것"을 권고했다.
  
  이는 지난해 말, 시민사회단체들로부터 "외국인력제도를 후퇴시킨다"는 비판을 받아온 외국인력정책위원회의 개정안 내용 중 핵심적인 쟁점을 지적한 것이어서 귀추가 주목되는 결정이다.
  
  하지만 인권위의 이같은 결정이 이들 연수추천단체의 진입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며, 대행기관 선정시 노동부가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줄 것, 사후감독을 철저히 해줄 것등 당연한 사안을 동어 반복하는 수준으로 나열하는데 그쳐 사실상 공공과 사익의 타협안에 머무른 것으로 보인다.
  
  산업연수생제도는 고용허가제를 도입하게된 문제의 발단
  
  1980년대 후반부터 국내 제조업체의 인력난이 가중됨에 따라 통상산업부 및 사용자 단체를 중심으로 외국인력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1991년에 해외투자법인연수생 제도가, 1993년에 산업기술연수제가 국내에 도입됐다.
  
  이 제도들은 노동을 제공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연수생"신분으로 묶어두면서 노동자성을 부정해 노동관계법과 산재보상법 등의 적용을 의도적으로 배제시켰고 그 결과 이주노동자들은 인간이하의 대접을 받아도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더욱이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를 비롯한 수협, 농협,건설협 등의 민간 이익단체들이 인력도입과 사후관리를 전담하면서 송출국에서 넘어오는 동안에 터무니없는 송출비용을 지불해야하는 이른바 송출비리와 사후관리를 빙자한 횡포들이 만연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고, 한국에서 말못할 인종차별을 경험해야 했던 다수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이탈을 거듭했고 2003년 전체 36만명의 외국인노동자중에서 29만명이라는 미등록 신분의 노동자들이 발생하면서 국내노동시장은 큰 혼란을 예감한다.
  
  고용허가제는 당초에 노동허가제를 포함한 두개의 논의 중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당연한 노동권을 인정한 "노동허가"의 개념이 아닌 사용자측의 이해를 대변한 "고용허가"의 개념이다.
  
  외국인노동자들은 당연히 "노동허가제"를 희망했지만, "고용허가제"가 도입되었고, 더욱이 산업연수생제도가 그대로 유지되고 미등록이주노동자의 구제 또한 선별적으로 진행되면서 각종 문제들을 산적한 채로 이른바 "고용허가제"시대를 맞이한다.
  
  죽음을 부르는 고용허가제, 외국인노동자의 일상마저 박탈해
  
  2003년 고용허가제가 도입된 이래, 제일 먼저 달라진 것은 외국인노동자의 인권이 아니라 "단속풍경"이었다. 고용허가제 이후 미등록이주노동자를 강제추방하기 위한 단속은 횟수와 강도가 더욱 강화되었고, 마치 늘어나는 국내 체류 외국인을 강제로 추방하기 위한 펌프질을 하듯 곳곳에서 외국인노동자들이 단속의 희생양이 되기 시작했다.
  
  공단 내에서 혹은 주변에서 상시적으로 단속이 진행됨에 따라 외국인노동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시민사회단체들의 행보도 더불어 바빠졌다. 미등록이주노동자에 대한 합법화에 있어 선별적이면서 불합리한 방식을 취한 정부의 태도는 결국 고용허가제를 유지하기 위한 단속의 강화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외국인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보다는 사용자의 이해에만 충실한 고용허가제의 취약성에 있다. 고용허가제는 이들 외국인노동자의 노동권을 제약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내용이 이들의 사업장 이동을 제한하는 규정이다.
  
  신자유주의적 노동정책이 대거 유입되기 시작한 1997년 이래 국내 노동시장은 이주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한국의 노동자들에게도 가혹한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저임금 정책과 노동권이 유린당하는 현실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최근 몇년 사이 단속 강화에 따른 외국인노동자들의 부상과 죽음이 심심찮게 언론에 두각을 보이는 것은 고용허가제 붕괴조짐과도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력정책의 근본 개혁을 주도해야할 정부 주무처 관계자들로 구성된 외국인력정책위원회가, 외국인력제도 일원화에 따라 제시한 개정안이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의 빈축을 사는 것은 사필귀정이었다. 연수추천기관을 사후관리 기관으로 지목하는 것에 대해 "고용허가제를 붕괴시키는 것"이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이주노조의 아노아르 위원장은 "해마다 증가하는 미등록이주노동자는 전체 외국인노동자의 비율이 절반을 넘어섰으며 2007년 후반기로 접어들면 70-80%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수생추천기관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 고용허가제의 개정 내용, 즉 연수추천기관들의 고용허가제 내에 진입을 허용하려는 시도는 외국인노동자 관련 단체들에게 "현실을 완전히 도외시 한 결과"이거나 "한국정부의 고용허가제 포기 선언"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단한 인종차별 국가" 오명 벗으려면 진심으로 외국인노동자 문제 대해야
  
  현재 한국정부의 노동정책은 "노동시장 유연성"만을 강조해온 결과 다양한 비정규직 차별과 특수고용노동자의 경우처럼 노동자성 자체를 부인하는 업종을 확산시키는 등 노동시장의 혼란과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사용자의 권리만을 강조하는 고용허가제에 입각해 국내로 유입된 외국인 노동자들은 "노예"나 다름없는 직장생활과 굴종의 삶을 강요당하기 일쑤다.
  
  대부분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은 저임금 혹은 임금체불, 고강도 노동, 혹은 불의의 사고 등으로 직장을 이탈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바로 미등록이주노동자의 길을 선택하는 것과 동일하다.
  
  이들을 단속하는 공익근무원, 용역직원들은 단속과정에서 마치 이들을 범죄자라도 되는 냥 수갑을 채우고, 웃통을 벗겨 얼굴을 가리는 등으로 경악스러운 행위를 자행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가인권위는 고용허가제와 외국인노동자 인력제도에 꾸준한 관심을 가져온 바, 지난해 11월에는 정부 측 관계자와 외국인노동자 인권 증진을 도모하는 시민사회단체 성원들을 모아 토론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외국인노동자의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들이 원하는 직장을 구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가 형성되어야 함은 익히 주지한 사실이다.
  
  지난 해 누아푸르드의 죽음은 잊지 못할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단속을 피해 공장과 공장사이를 뛰어넘다가 추락해 사망한 그는 사고 발생뒤 하루만에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당시 단속반원들의 책임과 국가배상의 문제가 거론되기는 커녕, 병원비를 사장이 낼 것인지 법무부가 배상할 것인지를 가지고 논란이 일었던 것은 우리 사회가 외국인 노동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그 누르푸아드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집회에 참석했던 압둘 사쿠르씨는 손가락이 두개가 잘린 상태에서 재활 훈련이나 별다른 기술도 체득하지 못한 채 고국으로 추방당했다. 압둘 사쿠르는 "테러리스트 혐의"로 조사를 받았고, 곧바로 출입국으로 넘겨져 외국인 보호소에 있다가 강제 추방당했다.
  
  이주노조 관계자는 "압둘사쿠르의 가족들이 지진 피해로 대부분 사망했고, 고국에서는 세계 곳곳에서 난민구호 팀들이 도움을 주고 있었으나 정작 한국정부는 그에게 어떤 재활의 기회도 주지않은 채 고국으로 돌려보내 그가 고국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인권위는 권고안 발표와 더불어 "외국인 근로자 인권 문제에 대한 예방과 시정의 노력을 적극적으로 펴나갈 것"을 약속했다.
  
  2007년은 연수생제도의 폐지로 외국인력제도가 고용허가제로 일원화되는 시점이다. 고용허가제가 기존 인력제도의 낡은 부분을 얼마나 보완해왔는지 냉정한 평가가 필요한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