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추위가 누그러진 지난 4일 아침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성공회대학교의 한 강의실. 아시아 각국의 이주민들이 한 자리에 모여들었다. 만삭의 몸으로 한국인 남편 손을 잡고 온 필리핀 여성, 한국어－태국어 사전을 손에 든 태국 여성, 방글라데시와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 버마 민주화 운동을 하는 버마(미얀마) 난민 청년들 그리고 중국동포들까지….

모두 35명의 이주민들이 강의실에 온 것은 이날부터 매주 일요일 6주간 실시되는 ‘이주민을 위한 한국시민사회 교육’을 듣기 위해서다. 교육은 대학교수들이 하루에 2명씩 강사로 나와 한국 사회에 대한 강의를 하고 오후에는 이들이 조별로 나눠 직접 자신의 얘기를 주고 받는 식으로 진행된다.

첫 강사는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이주자들은 한국어에 서툴 뿐 아니라 신교수를 모르는 이도 많았다. 한국에서 시민운동을 하는 버마 출신 이주노동자 마웅저가 신교수를 소개하며 “20년간 감옥에 계셨다”고 하자 몇몇 사람들이 탄성을 내뱉었다.

“제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감옥에 처음 들어갈 때 저도 여러분들처럼 ‘왕따’였어요. 동료 재소자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만드는 데만 5년 걸렸습니다. 낯선 곳에 오셔서 어려움을 겪고 계신 여러분과 저의 감옥 경험이 비슷한 측면이 있어서 제가 이 자리에 초대된 것 같습니다.” 신교수는 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의식적으로 천천히 말을 했고, 제스처를 크게 하는가 하면 칠판에 그림도 많이 그렸다. 신교수가 이날 강조한 것은 “아시아인으로서 ‘자부심’을 잃지 말고 한국인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많이 만들라”는 것이었다.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고 해서 ‘자부심’을 잃을 필요가 없다”는 것은 “한국 역시 겉모습만 번지르르할 뿐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취약한 나라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또 “돈 떼이지 않고 본국에 돌아가야지 하는 마음가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인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신교수는 “자기 자신과 상대방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아름다운 관계를 많이 만들어 나가면 아시아의 작은 나라들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문화가 꽃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의 도중 이주민들은 열심히 메모하는가 하면, 전자사전을 꺼내 낱말 뜻을 찾는 이도 눈에 띄었다. 한국에 온 지 1년 된 필리핀 여성 카리나는 강의 후 “한국에서 살아가는 데 유익한 말씀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3월18일까지 진행되는 교육에는 프랑스 망명생활 경험을 가진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의 ‘한 사회에서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 한국인으로 귀화한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 교수의 ‘한국 사회의 민족·인종문제’ 강의 등이 예정돼 있다.

교육부 지원금을 받아 이번 교육행사를 준비한 김애화 한국국제이주연구소 연구위원는 “다문화사회라고 하면 한국인의 이주민에 대한 이해는 물론 이주민들도 한국 사회에 대해 깊이 이해해야 한다”며 “예전에 했던 이주민 대상 시민사회 교육이 한국생활 후 고국에 돌아갈 활동가들을 위한 교육이었다면 이번 교육은 이주자들이 정주할 것을 전제로 한 교육”이라고 말했다. 문의(02) 2610-4217

〈손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