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붕 까지만(43·네팔)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위원장. 그는 이주노동자들의 권리 찾기, 노동조합 조직 확대, 이주노동자들의 신분을 등록제로 바꾸는 '노동허가제' 추진 등을 올해 주요 사업계획으로 꼽았다.

ⓒ 오마이뉴스 이민정

"명동성당 농성, 단식투쟁, 석방요구, 미등록된 동지들, 정부와 더 강하게 싸워야겠다는 생각…."

까붕 까지만(43·네팔)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하 서울경인이주노조) 위원장은 한국어 실력이 서툴렀지만, 그의 행적을 알 수 있는 단어들은 또렷하게 발음했다.

2005년 서울경인이주노조 결성 당시 사무국장을 지냈고, 지난해 수석부위원장, 그리고 지난 4일 제3대 노조위원장에 올랐다. 2004년 고용허가제 도입을 반대하다 동지들이 잡혀갔고,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명동성당에서 단식투쟁을 벌였다.

'정부와 더 강하게 싸우기 위해서는 조직을 더 발전시켜야겠다'는 생각에 공장 일을 접고 2002년 당시 민주노총 산하 이주노동자지부에 합류했다. 1991년 입국해 경기도 오산의 한 공장에서 일하다 98년 IMF 한파로 공장을 그만 둔 이후 돈벌이를 접게 된 두 번째 계기였다.

7일 민주노총 서울본부 사무실에서 만난 그에게 당선 축하 인사를 건네자 환하게 웃으면서도 농담처럼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국내 40만 이주노동자에 비해 조합원은 아직 360명뿐인 설립 초기 조직인 탓에 풀어야 할 숙제가 많기 때문이다.

할 일이 많은 그에게 법원은 뜻밖의 '당선 축하 선물'을 줬다. 지난 1일 서울고등법원이 이주노동자 노조 설립이 정당하다고 인정해준 것이다. 까지만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운동이 한 걸음 앞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며 웃었다.

서울경인이주노조는 지난 2005년 4월 창립 결의대회를 열고 노동청에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했지만, 노동청은 "불법 체류 외국인은 노조가입 자격이 없고, 이들을 주요 구성원으로 하는 단체를 노조로 볼 수 없다"며 신청서를 받아주지 않았다.

"한국행은 이주노동자의 희망"... 3년 보장 고용허가제는 문제

그는 "한국도 이주노동자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느냐"며 "지금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면 이주노동자들이 정부에 등록된 상태든 아니든,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불법체류'라는 말 대신 '미등록된 노동자'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불법체류 신분인 그들이 노조를 만든다는 데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그는 이에 대해 "이주노동자들이 미등록된 신분 때문에 고용불안, 너무 긴 노동시간 등 노동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노조가 필요하다"며 "도움을 청할 곳을 모르는 이들에게 노조가 도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주노동자들의 노동환경에 대해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보다 더 열악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최장 체류기간 3년 보장이라는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을 짚었다.

"2004년 고용허가제 도입 당시 이주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서는 이야기되지 않았다. E9비자(취업비자)로 한국에 들어와 3년간 계속 일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1년마다 계약을 새로 해야 한다. 만약 회사가 이주노동자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면 계약은 없어진다. 임금체불, 초과근무가 있어도 우리는 회사에 아무 말 하지 못한다."

고용허가제가 사업주에게만 권리를 줬다는 것이다. 고용허가제에 따르면 사업주가 1년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해 계약을 갱신해야 한다. 회사의 휴·폐업 등 불가피한 사유를 제외하고 원칙적으로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이 금지되어 있지만, 단순 육체노동자가 대부분인 이들은 계속해서 고용 불안에 시달려야 한다.

3년 고용 이후 사업주가 동의할 경우 귀국했다가 다시 입국해 3년을 더 일할 수 있지만, 각국에 희망자가 많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재입국은 희망에 불과하다. 정부는 국내 취업 대기자에게 우선 기회를 주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의 수를 제한할 수밖에 없고, 이주노동자들은 돈을 벌기 위해 불법체류의 길을 선택한다.

왜 이주노동자들은 3년 고용에 만족하지 못할까. 그는 "3년간 일해서 돈 벌어 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에 들어오기 위한 비용을 벌기에 3년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그러면서 최근 입국한 한 네팔 노동자의 사례를 들려줬다.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 네팔 관청은 200만원 정도 공식적인 비용을 요구했다. 하지만 오고싶어 하는 사람은 많고 다 올 수 없으니 브로커들에게 웃돈을 줘야 한다. 얼마 전 들어온 한 친구는 천만원 주고 들어왔다. 빚을 낸 것이지만, 그것도 2년을 기다려 겨우 한국에 오게 된 것이다."

한국에 오기 위해 치러야 할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셈이다. 그는 "좋은 회사에 들어가 안 입고, 안 먹으면 모를까, 집에 돈 부치고 빚을 갚고 나면 돈을 모으기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어 "네팔에는 농사 이외에는 돈벌이가 없으니 한국같이 일자리가 많은 곳에 오는 것이 네팔인들의 희망"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주요사업은 '이주노동자 권리찾기' 등

결국 이주노동자들은 '자발적' 초과근무를 원한다. 제한된 시간 안에 가능한 한 많은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연히 열악한 노동환경에 침묵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인권은 '일단 돈을 벌 후'로 밀리게 된다. 그는 직접 겪은 체험담을 털어놓았다.

"91년 한 공장에 입사해 7년간 일했다. 처음에 한국말이 서툴러 화가 난 관리인이 '시키는 대로하지 않는다'며 때리기도 했다. 말을 못 알아들어 밥을 못 먹은 적도 많다.(웃음) 서바이벌(생존)을 위해 교회나 외국인센터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그는 "지금도 이주노동자들은 새벽 5시부터 밤9시까지 일하는 등 노동환경이 나아지지 않았다"며 "일당제로 돈을 받기 때문에 휴일에 쉬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주노동자들의 권리 찾기 ▲노동조합 조직 확대 ▲이주노동자들의 신분을 등록제로 바꾸는 '노동허가제' 추진 등을 올해 주요 사업계획으로 꼽았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한국에서 가장 기분 나빴던 말'을 물으니 "남의 나라 와서 왜 이렇게 투쟁하느냐"는 가시 돋친 물음이란다. 그는 이 같은 물음에 답해줬다.

"이주노동자도 똑같은 노동자다. 한국에서 일하면서도 어려운 조건이 많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온 것이지, 기술이나 기계를 가져가려고 온 사람들이 아니다. 조금만 마음을 열어달라. 우리에 대해 조금만 더 알아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