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은 6번째 맞는 ‘세계 난민의 날’. 올해의 주제는 ‘희망의 불꽃 살리기’다. 전 세계적으로 2000여만 명의 난민이 핍박과 폭력을 피해 자신의 조국을 떠나 떠돌고 있다. 이들이 희망의 불꽃을 끄지 않도록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때라는 뜻을 담고 있다. 독일 월드컵 열기로 세계가 떠들썩하지만 돌아갈 나라와 집이 없는 이들에게 월드컵은 남의 얘기다. 초대받지 못한 낯선 한국에서 하루하루 외롭고 힘들게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한국 온 난민들은

난민이라고 하면 흔히 베트남 ‘보트피플’이나 아프리카 내전을 피해 고향을 등진 피란민 행렬, 난민 캠프를 떠올린다.

그러나 한국에도 900명에 가까운 난민이 희망의 불꽃을 간직하며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7년째 법정 다툼=내전이 끊이지 않는 아프리카 콩고에서 온 버지니아(34) 씨. 버지니아 씨는 내전이 한창이던 2000년 강간과 집단 총살의 위험을 피해 늙은 어머니에게 떠밀려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버지니아 씨는 한국 도착 직후 난민 신청을 했지만 한국 정부는 3년이 지나서야 그에게 난민으로 인정해 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 통상 난민 적격 여부를 심사하는 데만 3년이 걸린다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그는 법원에 난민으로 인정해 달라는 소송을 내기 위해 도와줄 사람을 찾았다. 1년여 만에 가까스로 한 공익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바로 항소했지만 아직도 법정 싸움은 끝나지 않고 있다.

그동안 버지니아 씨는 국내 거주 콩고인 모임에서 만난 남편과 결혼해 네 살짜리 아들을 둔 엄마가 됐다.

난민 지위를 받지 못한 버지니아 씨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의료 서비스. 임신에서 출산, 양육에 이르기까지 병원 문턱을 드나들 일이 많았지만 의사소통과 비싼 의료비는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외국인 환자를 잘 받지 않는 한국 병원 때문에 속을 태운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는 버지니아 씨는 아들이 한국의 초등학교에 입학해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불법체류자 신분인 그는 아들 교육은커녕 언제 쫓겨날지도 모르는 처지다.

▽아직은 부족한 지원=한국 정부의 경제적 지원이 거의 없는 대부분의 난민들은 신변 위험을 안고서 서울, 경기 등지의 공장에 취업해 힘겹게 살아간다.

방글라데시 제2의 도시 치타공 산악지대 소수민족인 줌마족 출신 로넬 차크마 나니(38) 씨. 그는 이주노동자처럼 보이지만 정치적 박해를 피해 온 난민이자 망명자다.

고등학생 때부터 로넬 씨는 줌마인의 자치를 요구하는 게릴라 활동을 돕다가 졸업 직전인 1986년 10월 군에 체포돼 3년을 복역했다.

치타공 산악지대 사정이 더 나빠지면서 게릴라뿐만 아니라 일반 줌마인에게까지 박해가 시작됐다. 견디다 못한 로넬 씨는 1994년 4월 한국행을 택했다.

1997년 정부와 게릴라군 사이에 평화협정이 체결되자 로넬 씨는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박해가 여전해 1년 만인 2000년 3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로넬 씨는 신변 위험에도 불구하고 2001년 자신을 따라 난민의 길을 택한 아내와 어린 아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그는 정식 난민도, 노동자도 아닌 불안정한 신분으로 4년 넘게 인천과 경기 김포의 가구공장을 전전하다 2004년 난민 지위를 얻게 됐다.

그나마 미얀마 출신 내툰나잉(37) 씨는 난민신청 3년 만에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운이 좋은 케이스.

1994년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온 그는 미얀마에서 학생운동을 했다가 구속된 경력이 있는 이른바 ‘운동권’ 출신이다.

그는 한국에 들어온 뒤 동료 미얀마인 20여 명과 함께 버마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를 세웠다.

그는 18일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의 생일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다. 민주화 운동을 위해 그는 풀타임으로 일하던 공장 일도 그만뒀다.

그는 “힘들게 난민 지위를 얻었지만 정작 난민 여행증명서, 건강보험, 외국인등록증 등 이 3가지 서류 외에는 별다른 경제적 지원이 없다”고 말했다.

유엔인권정책센터 김기연 사무국장은 “난민협약을 통해 난민에 대한 국제사회의 보호의무가 확립됐지만 박해를 피해 온 난민들을 경제적 목적을 가진 불법이민자로 간주해 강제추방하거나 보호소에 방치하는 사례가 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난민의 날:

매년 6월 20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난민의 날(World Refugee Day)’이다. 당초 6월 20일은 아프리카단결기구(OAU)가 1975년부터 ‘아프리카 난민의 날’로 정해 기념해 오던 날이었다. 국제적 난민 보호 개념의 초석을 세운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의 설립 50주년이 되던 2001년을 기점으로 ‘아프리카 난민의 날’을 ‘세계 난민의 날’로 넓혀 기념해 오고 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