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때 폐허가 된 서울을 배경으로 미군들에게 먹을 것을 달라 고 쫓아가는 어린이, 군부대에서 나온 음식물 잔반을 넣고 푹푹 끓인 꿀꿀이죽을 먹겠다고 줄지어 선 헐벗고 굶주린 민간인들, 부모 잃고 길바닥에 앉아 마냥 우는 아이…. 나는 그 사진이 바 로 50여년 전의 한국 모습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의 고통 과 재앙 속에서 민족의 앞날이 불투명했던 그 암흑같던 시절을 어 느새 우리는 잊고 있다.

동시에 대학의 은사가 들려준 일화도 생각났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하숙집 주인 할머니가 말했다는 거다. 한국전쟁 때 불쌍한 전쟁 고아들을 위해 자신이 직접 뜨개질을 해서 만든 여러 벌의 스웨터는 물론이고 돈과 입던 옷, 생필품들을 모아 보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고맙다는 편지를 한 통도 받지 못해 섭섭해했단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쓰나미가 덮쳐 전세계에 충격과 슬픔을 주 었던 인도네시아 중부 자와주(州) 욕야카르타에서 또다시 재난이 발생했다. 27일의 대지진으로 인한 공식 사망자가 5100명을 넘 었다는데 그 숫자는 더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사망자 외에 경상 ·중상 등의 부상자 1만5000여명에 이재민도 13만여명이나 된다 고 한다. 사회기반 시설이 전부 파괴되어 전력과 상·하수도 공급 이 중단됐다니 그 참상은 가히 전쟁을 방불케 한다. 게다가 잠잠 하던 화산까지 이번 지진으로 흔들려 연기를 뿜으며 폭발하려 한 다니 설상가상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싶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이런 생각부터 한다. 그런 참사에 얼마나 많 은 장애인이 발생할 것인가. 또 저항력이 약한 어린이나 노약자 들, 임산부들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왜 재앙은 그렇게 가 난한 나라, 불쌍한 사람들을 더 잔인하고도 끔찍하게 덮치는 것 일까. 처참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일이 손에 안 잡힐 지 경이 다.

사람은 누구 할 것 없이 자신만의 짐을 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살 수 없기 때문에 위로와 충고 로 다른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톨스토이는 말했다. 지금 이 땅에서의 우리 삶도 결코 녹록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끝이 보이 지 않는 경제불황으로 서민들의 마음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거기에 정치 사회적 혼란과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까지 더해져 우 리네 마음을 더욱 옹색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우리가 50여년 전의 그 가난한 나라 코리아가 아니라는 점이다. 가난에서 벗어난 세계 10위권의 경 제대국이다. 개도국들에는 선망의 대상이며, 수많은 이주 노동자 들이 와서 코리안 드림을 실천하려 애쓰는 나라다. 이제 남의 도 움을 받았던 우리가 십시일반의 정신으로 그들을 도울 때다.

경제적으로만 잘사는 나라가 아니라 어려운 이웃을 도울 줄 아는 존경받는 한국을 만들 때다. 일본의 발빠른 행보만 봐도 이 일 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저들 의 망연자실한 얼굴 표정은 멀지도 않은 50여년 전 바로 우리의 그것이 아니었던가. 세계 최빈국이었던 우리가 잘살게 되니 좋은 점도 있다. 작은 도움이 상대적으로는 큰 힘이 될 수 있으니 말 이다.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고 병마와 배고픔에 떠는 그들의 고통을 이 저녁, 잠시라도 생각해보고 싶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아주 작은 도움이나마 전해야겠다.

[[고정욱 /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