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는 동북아시대 조선족 사회 발전을 위한 ‘귀향 아리랑 문화축제’가 성황리에 열렸다. 불법 체류 중인 조선족을 하루라도 빨리 고향에 돌아가게 하기 위해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등이 기획했다. 이날 공연을 위해 방한한 중국 옌지(延吉)시 조선족 구연단(코미디)원들인 이동훈·전영호·장미옥·박정순씨 등을 10일 서울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이들은 중국 정부에서 인정하는 국가급 배우다.

중국에서 내로라 하는 코미디언들로, 설레는 마음으로 처음 밟아본 서울 땅이지만 이들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았다. 이들이 선보인 단막극 ‘엄마 안녕’과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본 재한 조선족의 모습이 머리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극을 마치는 순간까지 행사장은 눈물바다를 이뤘다.

‘엄마 안녕’은 외국에 갔다온 후 높아지는 조선족 사회의 이혼율과 중국에서 적응하며 살아야 하는 어린이들의 동심에 남은 상처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얻은 것과 잃은 것’은 한국에서 뼈가 저리게 일을 해 중국 남편에게 돈을 보내 집도 사게 하지만, 불법 체류자로 추방돼 집에 돌아와 보니 아이는 가출했고 남편은 보모와 놀아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조선족 사회의 비극을 연출했다고 전했다.

자신의 일처럼 가슴이 저미어 온다는 이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뒷골이 당긴다는 소주를 마다하지 않고 연거푸 목을 뒤로 젖히면서 움켜쥔 잔을 허공에 날렸다. 머릿속에 맴돌고 있는 조선족의 비극보다 차라리 뒷골이 지끈거리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

“다행인 것은 극을 본 조선족들이 얼마 전 법무부가 발표한 내용을 조금이나마 믿고 따를 수 있도록 의미를 충분히 전달했다고 자부합니다.” 중국 국가 1급 배우인 이동훈씨의 말이다.

법무부는 지난 3월 15일 ‘동포 자진 귀국 조치’를 발표했다. 자진 귀국하는 불법 체류 중인 조선족에게는 ‘출국 확인서’가 발급된다. 이 출국 확인서를 6개월 후에 영사관에 제출하면 추가 서류 없이 입국 사증을 발급하여 재입국과 3년간 취업을 보장하겠다는 것. 그동안 정부가 말로만 떠들던 입국 보장을 서면으로 해주는 전향적인 조치다.

“이러한 적극적인 정책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불안한 마음에 주변의 눈치만 보고 있다고 하는군요. 더 이상 조선족이 불법 체류자 신세로 가족과 생이별해야 하는 일들이 없었으면 합니다.” 국가 2급 배우인 전영호씨의 바람이다.

이번 행사가 어느 공연보다 뜻 깊었다는 장미옥(국가 2급 배우)·박정순(〃 3급 〃)씨는 “아리랑은 좋은 세상을 향한 우리 민족의 애틋한 염원을 담고 있다”며 “제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반년 동안만이라도 몸도 추스르고 못다한 효도와 자식을 돌 본 후에 재입국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독일 교포 행사에도 참석했던 조선족 코미디언들은 지난해 중국 각 지역 소수민족이 참가한 공연대회에서 전국상을 수상, 조선족 문화의 우수성을 떨쳤다. 이번 귀향 아리랑 문화축제에는 중국 정부의 공식 행사에도 참여하는 국가급 옌볜(延邊)가무단도 무대에 섰다.

남창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