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동포들 역시 더 이상 예외적 사건이 아닐 정도로 그 수가 많아졌다. 하지만 이들 역시 남한 땅에 정착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다.

그런가하면 우리 정부는 아직 외국의 난민을 잘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2년에 겨우 유엔 난민 협약과 난민 의정서에 가입했고 그러고도 10년 가까이 단 1명의 난민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2001년 에티오피아 난민 1명을 받은 것을 시발로 지금까지 난민인정 신청을 한 외국인 494명 가운데 37명을 난민으로 받아들였다.

이들을 둘러싼 문제는 구조적인 것이고 관련대책도 그만큼 단순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예산에, 정비해야할 제도도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그리고 결정적인 문제는 바로 이들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포용 수준이다. 외국 이주노동자건, 탈북 동포건, 난민심사 신청자건 간에 이들은 모두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막다른 궁지에 몰려있는 최약자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과 자유를 얻기 위해, 이 땅에 한가닥 희망을 걸고 찾아온 이들이다.

－난민·탈북자 문제등에 무관심－

이들에게 법적 지위와 상관없이 최소한의 인간적 대우를 하는 것은, 인간사회의 기본적인 가치에 해당하는 일이다. 만약 오늘날 이 세계가 일부 일방주의자들에 의해 멍들지 않기를 바란다면 이러한 인류애적 연민과 연대는 더욱 절실하다. 일제 침탈시기 동안 필설로 다 못할 탄압을 받고 해방 후에도 백성들이 한동안 이주 노동자 등과 다름없이 비참한 운명을 살았던 우리다. 그럼에도 우리가 때때로 이들의 인간 존엄성에 상처를 내거나 착취하면서 모질게 대하는 것을 보면 “우린 누구이며,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정체성에 대해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피해자는 곧 가해자다’라는 말이 있다. 또 “고문하는 자와 고문받는 자는 동일한 이다”(쇼펜하워) “나는 때리는 손이며 맞는 뺨이다”(보들레르)라는 시적 비유도 있다. 이는 모두 ‘나’ 속에는 여러 모습의 자아가 있으며 같은 조건 속에서 정반대의 모습을 보일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데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이 그렇지 않은지 생각해볼 일이다.

일본이 침탈의 범죄를 저지르고 다시 그 역사를 왜곡하는가 하면 독도 영유권 주장을 하면서 거듭 전과자가 되려 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일본 주식회사’의 한계를 재확인한다. (물론 오늘날 동북아시아 해역에서 일고 있는 격랑은 복합적이고 중층적이긴 하지만) 우리가 일본을 넘어서는 방법은, 전쟁으로 그들을 이기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그들의 어리석음을 따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며 동시에 현실적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힘이 약한 이민족이라 해서 마구 짓밟는 행위를 중단하는 일이다. 그리고 잘못을 했다면 일본과 달리 거듭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또 일본 신보수주의자들이 부추기는 국수주의 앞에서 민족주의 맞불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자칫 그것이 집단 이기주의적 국수주의로 나타난다면 우리의 미래도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약자 짓밟지 않았나 자문을－

외국 이주 노동자나 탈북동포, 난민을 둘러싼 논란은 1990년대 이후부터다. 따지고 보면 이들 문제 역시 요즘 한창 논의되고 있는 ‘1987년 체제 종식’ 문제와 맥이 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1987년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가 정치적으로는 민주화의 성과를 거두었지만 사회·경제적으로는 그 이전의 박정희식 발전모델을 대체할 만한 것이 나오질 않아 갈등이 깊어졌다’는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외국인 이주노동자나 탈북 동포, 난민 등의 문제는 그 이전단계의 정치적 인권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며 동시에 우리 사회가 준비없이 맞닥뜨리게 된, 매우 중요한 사회·경제 민주주의의 문제이다. 우리 사회가 세계성을 확보할 수 있는 사다리, 오늘날 우리사회의 정체성을 잴 수 있는 가늠자인 것이다.

〈김지영/경향신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