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7년에 개봉된 영화 ‘바리케이드’ (감독 윤인호) 중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돈벌러 미국에 갔다가 병만 얻어 돌아온 아버지의 대사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와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 그리고 이들처럼 과거 만리타국에서 차별과 착취에 고통받던 우리 앞 세대의 군상을 다룬 영화 ‘바리케이드’(감독 윤인호)는 그들 모두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장벽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 속 주인공은 미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생활하다 허리가 꺾인 채 무일푼으로 돌아온 아버지와 자신이 다니는 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이주노동자들 모두를 자신과 다른 존재로 부정하지만 결국 모두가 결코 다르지 않은 사람들임을 깨닫게 된다.

‘바이케이드’ 이후 8년이 지난 지금 이 땅의 이주노동자는 공식집계로만도 40만명에 육박하고 있고, 거리에서 우리보다 어두운 피부에 작은 키를 한 이방인들을 만나는 것도 일상적인 일이 됐다.

그러나 이들과 우리 사이에 놓인 바리케이드는 여전히 높고 견고하다.

오히려 과거 일본·독일·미국 등으로 노동자로 떠나야했던 지난 기억은 망각되고, 세계화와 무한경쟁이라는 슬로건 속에서 선진국의 백인처럼 소비하기 위해 후진국의 유색인종에게 궂은 일을 맡기는 것이 당연하다는 새로운 제국주의적 시각이 오히려 일반화돼버렸다.

여기에 같은 피부색을 가진 중국인이나 심지어 같은 핏줄인 조선족조차도 냉랭한 차별과 비하의 대상이 돼버린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눈으로 한국 사회를 바라보고, 시각을 영상에 담아 스스로 말하는 프로그램이 방송됐다는 사실은 그 의미가 결코 적지 않다.

시민방송 RTV가 지난 16일 첫 선을 보인 <이주노동자의 세상>은 액세스 채널의 필요성을 확인시켜 준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위성방송과 일부 케이블TV로 한정되거니와 한 달에 한시간 편성(매주 토요일 밤 9시)이라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내국인의 시각으로 이주노동자를 다룬 것이 아니라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제작하고 출연하는 최초의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MBC의 <아시아, 아시아>와 같이 이주노동자 문제를 다룬 방송 프로그램은 있었지만 이 안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동정해야 할 타자들’이었다.

그러나 RTV의 <이주노동자의 세상>은 이주노동자 스스로가 자신의 문제에 대해 직접 발언한다는 점에서 비로소 우리 방송이 이주노동자들을 우리 사회의 한 일원으로 받아들인 것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현재 <이주노동자의 세상>의 제작에는 3년에서 십여년에 걸쳐 한국생활을 경험한 8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 8명의 이주노동자들은 굳은 살 박힌 손으로 찍은 영상과 어눌한 발음의 리포트로 ‘우리도 당신들과 다르지 않음’을 전하며 이들과 우리 사이에 놓인 장벽을 허물고자 하고 있다.

이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소박하다.

요컨대 ‘당신들의 피부는 노랗고 우리들의 피부는 검다.

하지만 당신들과 우리 모두 몸 속에는 붉은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선호 기자 arioso@media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