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부터 중국 조선족의 이주가 시작돼 한국에 조선족 이주자만 17만 명이 넘어섰다. 조선족은 특히 여성 이주자의 비율이 높다. 식당에 가면 조선족 여성들이 서빙을 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고, 조선족 여성들과 한국 농촌총각을 맺어주려는 어느 군청의 정책실패나 조선족 여성들의 사기결혼 시도를 비난하는 기사도 심심치 않게 보이곤 한다. 또 조선족 중년여성들이 맞벌이 부부들이 환영할만한 좋은 입주 ‘가정부’가 되어주고 있다는 정보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사적 경로 통한 불법 취업 많아

이주 노동자 수가 80만 명이 넘어서고 있는 한국에서 조선족 여성이주자는 특히 한국인 남성의 적절한 배우자로 이주하거나, 한국인의 생활 속에서 서비스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이주노동자들과 구별된다. 그러나 대중적으로 조선족 이주자의 문제는 ‘민족의 문제’, 즉 ‘한국인과 같은 민족임에도 한국인과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문제 이외의 문제로 부각된 적은 거의 없다.

여성들이 가사노동자로 보다 부유한 국가로 이주하는 경우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이주의 여성화’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일본, 대만, 홍콩, 말레이시아 등 1990년대 경제위기 이전까지 경제적으로 급격한 성장을 경험한 동아시아국가에서 가사노동자의 수입이 크게 증가해 아시아 지역 안에서의 가사노동자로써의 여성들의 이주가 국제적인 노동력 이주의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중 한국은 조금 예외적인 상황에 있는데, 자국의 여성인력의 활용을 위해 가사노동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과는 대조적으로 가사서비스업을 여성하층인력의 취업 안전판으로 여기면서 가사노동자의 수입을 전면적으로 금지해왔기 때문이다.

다만 조선족의 경우는 이미 이들이 한국에서 유사한 외모와 언어를 바탕으로 식당이나 개인 가정집에 ‘불법적’으로 많이 취업했고, 조선족 이주자들의 ‘같은 민족으로의 대우’에 대한 요구를 정부에서 일부 받아들이면서 2002년 말부터 서비스분야취업관리제(2004년부터는 고용허가제에 통합)를 통해서 예외적으로 최대 2년간 취업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한국에 친척이 있는 경우라 할지라도 규정상 친척의 초대로 비자를 받아(방문동거비자) 들어온 경우에만 합법적으로 취업할 수 있다. 특히 고용허가제가 실시된 이후에는 반드시 교육을 이수하고 고용안정센터를 통해 취업이 이루어져야 하는 등 합법적인 통로가 좁고 까다롭기 때문에 대부분이 미등록의 신분으로 한국에 들어와서 사적인 경로를 통해서 ‘불법적’으로 취업한다.

중국에서 이주를 결심한 조선족 여성들은 대부분 아는 사람들을 통해 이주를 도와주는 중간 브로커의 전화번호를 소개 받게 되고, 전화만 걸면 이주에 필요한 모든 서류들이 구비되어 집에 배달된다고 한다. 이전까지는 취업이 가능한 연령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권에 이름뿐만 아니라 나이도 실제보다 많게 위조되는 경우도 많았다.

“내 안 그래요, 남의 거 사갖고 왔다고. 내 여권 나이는 이제 육십 아홉이에요. 그저 지금은 25세 부텀 되지만도 이전에는 안 되었거든요. 육십 다섯부터 되었어요. 내 나올 때는 육십 다섯 되야 나온다 그래, 내가 그게 나올 때 되는 나이 육십 일곱으로 나왔으니까 지금 (여권 상으로는) 나이 육십 아홉이래요(전금희씨, 54세)”

브로커를 통해서 한국에 온 여성들은 이주할 때 브로커에게 한국 돈으로 1000만원에서 1500만원의 돈을 높은 이자에 빌리게 되어 처음 1년 동안 번 돈은 빚을 갚는 데 쓰게 된다.

“한국사회 구경도 못해보고 지냈어요”

입주 ‘가정부’로 일하는 대부분의 조선족들은 중장년의 나이에 자식의 고등교육이나 결혼을 위해 들어가는 큰돈을 마련하기 위해 가족을 모두 중국에 두고 홀로 이주한 여성들이다. 이들보다 젊은 조선족 여성들은 사적인 생활이 전혀 없는 입주형태의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남편과 같이 이주한 경우에도 한국에서 남편과 같이 거주지를 잡아서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입주 가정부 일을 꺼리게 된다.

반면 독립적으로 이주한 중장년 여성들에게는 식당 일은 고된 육체노동이기 때문에 초기에는 취업하기 쉬운 식당에서 일하다가도 곧 한국인 가정집을 소개 받아 ‘가정부’로 일하게 된다. 이들은 대부분 같은 동네에 살았거나 친척인 조선족 여성들과 이들을 고용했던 한국인 고용주 여성들을 통해서 비공식적으로 취업하게 된다. 특히 한국에 온 초기에는 한국에 대해 잘 모르고 미등록의 신분인 것이 드러나는 것이 불안하기 때문에 입주 ‘가정부’로 취업해서 사적인 가정 안에만 머무르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그때 당시에는 나가면 잡힌다, 불법체류자다 잡힌다 그러고 또 우리 사모님이 ‘아줌마 잘못하면 우리도 벌금 1000만원이고 아줌마도 벌금 천만원이다’ 하니까, 이렇게 다그치니까. 뭐 쓰레기 버리러 나갈 때도 그저 딱 바로 버리고 들어오는 거야. 이러다가 모든 한국인 사회를 이래 구경도 못해보고 지냈어요.(이명자씨, 65세)”

실제 조선족 여성들은 한국과 중국에 아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주하여 취업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아는 사람 하나 없이 홀로 고립되어 일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러나 미등록 신분에, 사적이고 비공식적인 통로를 통해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법적으로 보장 받지 못하고 있는데다가, 큰 빚이 있어 빨리 갚아야 한다는 마음이 우선 앞서고, 한국의 모든 것이 두렵고 낯설기 때문에 억압적인 노동조건도 참고 견딘다. 그렇게 조선족 여성들은 한국에서의 생활에 적응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