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녕하십니까? 저는 미얀마에서 온 싼툰입니다" 매주 일요일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회과학관 4층엔 유난히 외국인들로 붐빈다. 그리고 어설픈 한국어가 이어진다 주중에는 하루 12시간씩 근무하고, 주말에는 한국어 공부를 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있는 곳이다.
주중엔 하루 12시간 근무, 주말엔 한국어 공부하는 이주노동자들
한국외대 내 한국어교육과의 주최로 이루어지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한국어 공부방 '든손'에서는 한글공부가 매주 일요일 2시부터 5시까지 이루어진다. 2시부터 4시까지는 단계별 수업, 4시부터 5시까지는 합동수업으로 단어게임을 한다. 강의실에 도착했을 때 교실은 한바탕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한국어 선생님과 외국인학생이 함께 장난치며 재미있는 우리말 게임을 통해 한글을 익히고 있었다. 마침 그날은 시험을 본 날이었다. 시험을 통해서 반이 다시 나뉘는 것이다.
대학 강의실 빌려 배우는 외국인 노동자, 열기로 가득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피곤해 보였지만 눈빛만은 배움의 열기로 가득하다. 10여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었는데 이들 중 대부분은 한국인과 간단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모두 미얀마에서 온 노동자들이다. 미얀마는 아직 우리 나라와 고용허가제를 맺은 나라가 아니어서 이들은 연수생제도를 통해서 한국에 왔다고 한다. 이들은 "미얀마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서 한국과 고용허가제를 계약하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톤톤저씨(23)는 "국회의원들 나빠요. 그 사람들이 우리 고용허가제법 통과 안되게 했어요"라며 하루빨리 미얀마 노동자들에게도 고용허가제가 적용되기를 바랬다.
그는 "왜 우린 고용허가제를 받을 수 없나요? 우리 나라가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해서 우리가 잘못한 건가요?"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뭘 잘못했나요?" 고용허가 제한돼
그는 이어서 "어떤 나라는 고용허가제가 되고 어떤 나라는 안되는 게 잘못된 것"이라고 힘을 주어 말했다. 그들은 연수생 자격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3년이 기한이다. 기한을 넘으면 불법체류가 된다. 하지만 미얀마에서 한국에 오는 데 내야 하는 돈이 자그마치 700만원. 고향에서 이 돈이면 10년이상 아무것도 쓰지 않고 월급을 저축해야만 모을 수 있는 돈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 돈을 갚기 위해 한국에 와서 1년 동안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않고 거의 모든 돈을 고향으로 송금한다고 한다. 한국에 나와 있을 때 부모님 두 분이 돌아가셨다는 엉저원씨(23).
그는 "너무 고향에 가고 싶었으나 갈 수 없었다. 가면 다시 한국에 올 수 없으니까. 그 때 가장 많이 울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얼마 전 새해를 맞아 남산타워도 가보았다는 싼툰씨(33.미얀마). 이제 한국에 온지 1년 반이 된다. 본국 미얀마에는 아내와 딸 둘이 있다.
허가된 3년간 돈 모으기 위해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도 고향 못가
그는 한국에 온 뒤 아내에게서 처음 편지가 왔을 때 가장 슬펐다고 한다. "일이 너무 힘들면 많이 하지 말라"는 아내의 편지에 눈물을 왈칵 쏟았다는 싼툰씨. 그는 지금 두 딸이 가장 많이 보고 싶다고 한다. 화장품 공장에 들어가는 게 올해의 소망이라는 싼툰씨. 하지만 한국에선 지금 있는 비닐공장에만 계속 있어야 한다. 연수생자격으로 와서 공장을 바꿀 수 없다.
지금은 연수기간이 지나 어느새 불법체류자가 되어버린 제땐씨(43)는 한국에 온지 벌써 많은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그 긴 시간 속에서 행복했던 기억은 그에게 별로 남아있지 않다. 제땐씨는 "한국에 와서 많이 아팠을 때 무료로 치료해주고 신경써준 의사와 간호사가 가장 고마웠다"고 회상한다.
"불법체류자가 되면 한국 사람이 잘못해서 한국 사람하고 싸워도 다 내 실수가 된다. 어쩔 수 없다. 불법체류자의 인생이 그렇다"며 그는 끝내 말끝을 흐렸다.
"일을 8시간만 했으면 정말 좋겠어요"
외국인노동자들에게 한국은 너무 춥다. 아침 8시 반부터 밤 10시까지 하루 12시간도 넘게 일해야 하는 현실. 한 외국인 노동자는 쉬는 시간이 없는 회사에 다닌다고 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밥먹는 시간 1시간을 제외하면 쉬는 시간없이 계속 일해야 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이렇게 일하면 체력이 너무 달려서 견디기 힘들다고 한다. "한국에선 아파도 그 사람이 밥먹을 수 있으면 일을 해야 하는 건가요?" 제땐씨는 공장에서 한 이주노동자 동료가 손을 다쳐 아팠는데 "밥먹을 수 있으면 일해야 한다"는 사장의 말에 "많이 서러웠다"며 얘기했다.
한국와서 가장 처음으로 배웠던 말 "빨리 빨리"
"일 할 때 한국사람들은 항상 '빨리 빨리 해라'고 합니다. 그래서 알게 됐어요. 그 말 모르면 여기서 일할 수가 없어요.근데 그렇게 빨리 빨리 하다 보면 불량품 나오지 않나요? 작은 회사에서 불량품 나오게 되면 큰 회사까지 그러는 거 아닌가요? " 그들이 마지막으로 한국 사람들에게 바라는 점은 "우리를 낮게 보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이어서 그들은 "우리는 한국와서 한국 사람들을 가족처럼 여겼어요. 하지만 한국은 우리에게 그러지 않았어요"라며 개그콘서트의 '블랑카'가 그들의 실제 생활과 거의 비슷하다고 전했다. 그들은 "조금만이라도 우리 입장에서 생각해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를 낮게 보지 말아 주세요"
'나중에 미얀마가면 한국에 다시 오고 싶냐'는 질문에 말없이 웃음만 지어 보였던 그들. 꿈을 안고 한국에 왔지만 기대와는 너무 달랐던 낯선 땅 한국. 이미 상처받은 그들에게 한국은 아무런 대책이 없다. 수업시간 깨알같은 글씨로 한국말을 서툴게 적으며 외우던 그들.
"일 힘들어도 잘 할 수있어요" 엉저원씨의 공책에 써있던 글이 뚜렷하다.
노컷뉴스 채송화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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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7 1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