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일 종묘공원에서 이주노동자들이 고용허가제 폐지를 주장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05 오마이뉴스 안홍기

태국 여성 이주노동자 8명이 노말헥산 중독으로 하반신이 마비돼 치료중인 가운데 불법 이주노동자 양산을 막기 위해 고용허가제 폐지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이주노동자 노말헥산 중독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27일 오후 서울 종묘공원에서 250여명의 이주노동자와 학생 등이 참여한 가운데 집회를 열고, 불법체류 이주노동자 단속 및 추방 중단과 고용허가제 폐지를 촉구했다.

집회를 주최한 노말헥산공대위에는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 등 13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3월 말~4월 초 이주노동자들의 독자적 노동조합 만들어질 것"

이날 집회에서는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고용허가제가 집중적으로 성토 대상이 됐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한 이주노동자는 "고용허가제에서는 사업장을 이동할 수 있는 자유가 없다"며 "프레스(압축가공) 공장 같이 위험한 회사가 많지만 어쩔 수 없이 그곳에서 일하다 손만 잘리고 있다"고 고용허가제를 비판했다.

김재천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장은 "이주노동자 복지제도를 아무리 잘해도 노동비자를 받지 못하면 다 허사"라며 "고용허가제 하에서 미등록 노동자는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고, 등록 노동자도 3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미등록 노동자 처지가 된다"고 덧붙였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아노아르 민주노총 이주노동자 지부장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연대해서 노동비자를 쟁취할 때까지 투쟁하자"며 "3월 말이나 4월 초에 이주노동자들의 독자적인 노동조합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 27일 탑골공원에서 집회에 참가중인 한 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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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또 "자본가들은 사람이 죽는지 사는지도 생각하지 않고 '빨리빨리'를 외치며, 아프다고 하면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우리들의 피와 땀을 착취하고 있다"며 "우리는 노동자이면서 인간이기에 권리를 요구하러 길거리로 나왔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단속추방 중단 및 이주노동자 합법화 쟁취 ▲산업연수생제도와 고용허가제 폐지 ▲이주노동자 기본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이 땅에서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악으로 깡으로 투쟁할 것"을 결의했다.

노동허가제는 국내 기업이 이주노동자를 선발해 계약을 맺은 뒤 그 기업에서만 일정 기간 근무하게 하는 고용허가제와 달리 합법적인 체류 허가를 얻은 이주노동자가 자신의 뜻에 따라 기업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이다.

종묘에서 탑골까지 행진... 일부 시민 거부감 표시도

이들은 오후 4시30분경부터 종묘공원에서 500여 미터 떨어진 탑골공원까지 1개 차선을 이용해 행진을 벌였다. 이들은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Stop! Crackdown!(일제단속 중지하라), "우리에게 비자줘라", "고용허가제 박살내고 노동허가제 쟁취하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30여분간 행진했다.

이들이 행진하는 동안 몇몇 행인들은 "시끄럽게 하지마", "빨리 너희 나라로 돌아가" 등의 말을 하며 표정을 찌푸리기도 했다.

그러나 길을 지나던 김용기(70)씨는 "이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에는 우리가 잘못한 것이 있을 것"이라며 "외국 사람이 남의 나라 수도 한복판에서 집회를 열지 않도록 미리미리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8개 차선 중 1개 차선에 교통경찰과 통제선을 설치해 시위대를 호위하고, 전투경찰 3개 중대 300여명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탑골공원 옆 골목에서 이들이 해산할 때까지 대기했다.

이주노동자들은 탑골공원 앞에서 30여분 간 집회를 계속하다 저녁 5시30분경 자진 해산했다.

▲ 27일 이주노동자들이 종묘공원에서 탑골공원까지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2005 오마이뉴스 안홍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