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말헥산에 중독돼 하반신 마비 증상을 보여 본국으로 돌려보내졌던 태국 노동자들이 재입국해 18일 안산중앙병원에서 검진을 받고 있다. 다발성 신경장애(일명 '앉은뱅이병') 판정을 받고 안산중앙병원에서 치료중인 씨리난 옆에 휠체어가 놓여져 있다.

ⓒ2005 오마이뉴스 남소연

최근 태국 출신 여성노동자들에게 노말헥산 유기용제 중독이 집단적으로 발생한 이후 이주노동자의 안전보건 문제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언론사들은 앞 다투어 노말헥산의 중독성을 알리면서 해당 사업주의 비도덕적 행위를 비난하는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정부 또한 마치 이번 사건이 매우 예외적인 사건인양 노말헥산 사용 실태를 점검하겠다고 부산을 떨고 있다.

그런데,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작업환경과 근무조건을 감안하면 이번 사건은 매우 사소한(?)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또한 이주노동자의 산재 실태에 관한 각종 보고가 시민단체 뿐 아니라 정부 보고서에서도 제출되었던 정황에 비추어볼 때 이미 예견된 사고였다는 데에 그 심각성을 찾아볼 수 있다.

"유기용제 중독 포함해 산재적용 치료 없어... 산재은폐 심각성 반증

2002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수행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조사 대상자의 32.2%가 산재를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고, 경기도 마석 지역을 대상으로 노동건강연대가 2002년도에 수행한 자체 조사에서 응답자의 52%가 업무상 재해의 경험이 있다는 조사결과가 있을 정도로 이주노동자의 산재 문제는 이미 오래 전에 발생한 심각한 문제였다.

노동부조차 2002년 이주노동자의 노동재해 현황을 발표하면서 대부분이 협착, 추락과 같은 원시적 형태의 재해에 노출되어 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음을 보고하고 있을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유기용제 중독과 같은 원시적 재해가 이주노동자에게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음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작년 한 해 동안 유기용제 중독을 포함하여 직업병으로 이주노동자가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아 치료를 받은 예가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직업병의 경우 국내노동자들조차 산재 적용을 받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점점 그 비중이 증가하는 추세에 비추어볼 때, 또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도 없이 근무하는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작업환경을 고려할 때 직업병으로 치료를 받은 경우가 한 건도 없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결과라 할 수 있다. 산재은폐가 얼마나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는지를 반증해주는 결과인 것이다.

국내 노동자가 기피하는 3D 업종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는 구조적으로 산재 및 직업병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따라서 국내노동자에 비해 산재 및 직업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 또한 인권위 조사에서도 밝혀졌듯이 이주노동자가 근무하는 업종과 사업체는 가장 기본적인 안전보건 교육조차 이루어지지 않을 정도로 안전보건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산재의 위험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이주노동자의 산재 문제는 이주노동자가 주요하게 배치되어 있는 업종과 사업장의 안전보건에 대한 구조적인 해결책을 세우지 않는 한 해결되기 어려운 한계를 안고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안전보건의 문제를 안고 있는 사업장에 대하여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고 이주노동자의 수혈을 통해 문제를 덮어두려는 이상 이러한 문제는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 바로 이주노동자를 불법체류자로 만드는 고용허가제다.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이 사업장에서 이루어지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노동자가 사업장에서 안전보건에 있어서 얼마나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렇지만, 이미 구조적으로 산재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이주노동자가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상의 제약으로 사업주에게 종속적 관계에 위치해 있다면 안전보건에 있어서 최소한의 대응력을 갖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게 된다.

산업연수생·고용허가제 산재의 중요한 원인...이주노동자 산재보상 차별 말아야

이번 사건도 태국 이주노동자들이 본인들의 건강 문제와 작업 관련성을 강하게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신분상의 조건 때문에 업무를 중지할 수 없었고 최소한의 자구책조차 취하기 어려웠다는 데에서 문제가 더욱 악화되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따라서 불법체류를 조장하는 현행 산업연수생제도와 고용허가제도는 다른 인권문제 뿐 아니라 산재문제에 있어서도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주노동자는 국내 노동자보다 산재 및 직업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훨씬 클 뿐 아니라 산재 보상조차 제대로 받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안전보건에 있어서 매우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서 산재를 당한 이주노동자의 3.3%만이 산재보험으로 치료를 받았다는 응답할 정도로 이주노동자에게 산재보험이란 현실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산재보험의 문제는 국내 노동자들조차 남의 나라 이야기일 정도로 접근성이 취약한 것이 현실이다.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으려면 근로복지공단의 승인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여러 제약 조건 때문에 사고성 재해와 같이 명확한 것조차 산재를 신청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직업병의 경우 본인이 직업병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여 신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고 직업병을 인지하고 신청을 해도 산재 인정이 차일피일 미루어지다고 기각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에 이를 정도다. 이처럼 국내 노동자도 산재 인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주노동자가 산재보상을 받기란 매우 어려운 일임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웬만한 중대재해가 아니면 신청조차 생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직업병은 말할 것도 없고, 불법체류자 신분이면 더욱 그러하다.

이와 같이 노말헥산 중독사건으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이주노동자의 산재 문제가 해결의 가닥을 잡으려면 무엇보다 이주노동자에게 차별적 조건을 강제하고 있는 현행 고용허가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고용허가제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산재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일명 3D 업종으로 명명되는 취약한 안전보건의 문제, 국내노동자의 기피 문제를 이주노동자의 고용으로 해결하려는 이상, 그리고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사회적 선택이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상 문제는 계속 재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말 정부가 안전보건의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마치 노말헥산만 문제인 양 몇 몇 사업체에 대하여 정밀점검을 지시할 것이 아니라 그 범위를 전체로 확대하여 현 상황을 있는 그대로 조사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보상에 있어서도 많은 제도적 보완장치가 필요하다. 국내에서 비준한 국제연합 또는 ILO 협약(근로자의 재해보상에 대한 내·외국인 근로자의 동등한 대우에 관한 협약)에 근거할 때 최소한 산재보상보험법의 적용에 있어서 차별의 존재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 이주노동자 산재 및 권리보호 담당 부서 신설해야

현재 정부 당국 및 근로복지공단은 매우 수동적인 자세로 이주노동자의 산재보상 문제를 다루고 있고, 국제 협약의 취지와 달리 출입국관리소에 불법체류자임을 신고함으로서 스스로 수급권자의 권리를 제약하고 있다. 따라서 형식적인 법 조항에 얽매여 시정할 것이 없다는 태도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이주노동자 권리보호 정책과 제도를 구비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노동부 및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보상을 포함한 이주노동자의 권리보호를 담당할 부서를 신설해야 한다. 노동부 근로기준국 산하에 이주노동자 보호과를 신설하고 산재보상을 포함하여 적극적인 보호정책을 입안하고 관련 법, 제도를 정비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다음으로 근로복지공단 산하에 이주노동자 보상국을 신설하여 사각지대에 있는 이주노동자가 산재보험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급여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개발, 운용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프로그램이 실제적인 프로그램이 될 수 있도록 이주노동자 인권단체 및 사회단체가 참여할 수 있는 조건과 기전을 마련해주고 함께 프로그램의 기획 및 제작, 집행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셋째, 불법체류 이주노동자가 산재요양을 신청할 경우 출입국관리소에 신고하는 일을 전면 중단해야 한다. 법무부의 협조 요청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이러한 행위는 산재보상에서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국제협약에 배치되는 행동이다. 또한 특정 목적을 위해 획득한 정보를 다른 용도로 전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국내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관련 법규와 국제 협약 등에 기초해볼 때도 신고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

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이민국의 업무와 보건의료재정청 등 사회보장의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간에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사회복지서비스 업무와 불법체류 관련 업무를 이원화된 행태로 진행함으로서 사각지대에 있는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

이러한 단기적인 제도적인 보완과 함께 산재보상보험의 적용이라는 측면에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산재를 인정받으려면 근로복지공단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잘못된 법 조항이 그대로 남아 있는 한 광범위한 산재은폐로 귀결되는 산재보험의 접근성 장애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따라서 근로복지공단의 사전승인제도를 철폐하고 일정한 기준에 따라 먼저 치료를 보장하고 현행 건강보험과 같이 전문적인 평가기관에 의해 사후 평가를 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러한 제도적 개선은 국내노동자 뿐 아니라 이주노동자의 산재보험 적용 확대를 위해 필수적이다.

	▲ 임준 교수
	ⓒ2005 오마이뉴스 조호진

이주노동자의 산재 문제는 오늘 갑자기 발생한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그 전모가 드러난 것도 아니다. 이 사회가, 그리고 정부가 직, 간접적 방식으로 은폐해온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일 뿐이다. 문제의 해법은 또 한번 그 실체를 부정하고 일부의 비도덕적 행위로만 치부하고 문제를 개별화시켜버리느냐, 아니면 우리 사회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문제 해결을 위한 진지한 모색을 시작하느냐에 달려있다. 이미 그 답은 정해져 있지 않은가!

/오마이뉴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