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동안 결혼하는 사람 중에 여덟에 한 명이 국제결혼을 한단다. 단일민족이라는 수식어도 사라진 지 오래됐다. 내가 사는 면 단위 동네에서도 심심찮게 외국인들을 볼 수 있다. 한국에 일하러 온 외국인도 많지만 한국의 남성과 결혼해서 사는 외국 여성들도 많다. 아마 이 중에는 한국인으로 귀화한 사람들도 제법 있을 것이다. 아직 한국말이 서툴긴 해도 귀화했으니 엄연히 한국인이다. 그러나 그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습득해 체화한 모국의 관습을 강제로 '삭제' 시킬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관습 이해 못해 가정 파탄

결혼이민여성들이 한국에 처음 와서 가장 많이 겪는 갈등은 관습의 충돌인 듯하다. 물론 말이 통하지 않아 잘 풀어내지 못하는 측면도 없지 않지만 가족 간에 생긴 오해를 강제로 해결하려다 보니 갈등이 증폭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아는 결혼이민여성 몇몇은 그러한 이유로 이혼을 하거나 집을 뛰쳐나간 경우다.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한국의 가부장적 문화도 다문화가정의 갈등 원인인 것 같다. 가부장적 관습은 다문화가정이 아니라도 갈등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지만 결혼이민여성에겐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한 예로 몽골에서 이주한 '홀랑'이라는 여성은 한국으로 시집온 지 6개월 되던 때 직장에 나갔다. 고향의 가족이 워낙 살기 어려우니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까 해서 일을 했는데 월급을 모두 시어머니에게 뺏겼다는 것이다. 시어머니로서야 아직 한국 물정을 모르는 며느리가 돈을 가지고 있으면 관리를 잘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 여성에겐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을 것이다.

'돈 관리'라는 표현을 썼지만 솔직히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시어머니의 며느리에 대한 의심이 원인으로 보였다. 또 베트남에서 왔다는 이민여성은 집안에서 하인처럼 부려 먹는 데 참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왔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주노동자센터나 인권단체의 누리집을 들여다보면 유사한 '호소'들이 비일비재하다.

사실 우리가 '다문화가정'이라고 하지만 솔직히 결혼이민여성에 대해 지나치게 '한국화'만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자치단체나 시민사회단체에서 운영하는 한글교실도 6개월간의 교육과정이 한글 익히기를 비롯해 한국문화를 체험하고, 한국 음식을 만들며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예절을 배우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지난해 여성개발원이 자치단체와 시민사회단체를 대상으로 교육프로그램을 조사한 결과 '한국화'를 요구하는 교육이 대부분이었다. 한글교육 74%, 한국요리강습 44.6%, 전통문화체험 34.7%, 예절교육 24%. 그러나 어느 정도 한국어를 습득한 여성에 대한 지원책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나왔다. 취업교육이나 법률지원, 의료상담은 각각 10%에도 못 미쳤다.

이민여성들에게 지나치게 한국문화만 수용할 것을 강요하면 그 가정이 화목해질 수가 없다. 말 그대로 '다문화가정'답게 한 가정에 두 나라의 문화가 공존하는 형태가 되면 갈등의 원인은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그래서 자치단체나 시민사회단체에서 운영하는 교육프로그램도 이왕이면 아내의, 며느리의 모국 문화와 관습을 같이 배우는 과정이 있으면 좋겠다. 일부 관련 단체들이 가족이나 부부를 대상으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상호문화 공유하는 것 중요

외국에서 온 며느리를 '밖으로 내돌리지 않으려고' 한글교육도 못 받게 하는 집도 있다고 들었지만 사실 한참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습득해야 할 시기에 임신이나 양육 때문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이민여성들도 많다. 이들을 위한 찾아가는 '다문화가정 교육프로그램'도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문화가정이 갈등을 빚지 않고 안정적으로 이어지게끔 하는 데는 한국인가족의 이해뿐만 아니라 사회·정책적 지원이 더욱 많아져야 한다. 앞서 몽골 여성 '홀랑' 씨의 예를 들었지만 어렵게 사는 모국의 가족에 조금이라도 보탬을 주려는 생각으로 이주한 여성도 있다. 많이 있다. 자신의 일신만 넉넉하게 살기보다는 고향의 가족을 생각하며 안타까워하는 것은 인지상정일 터, 취업교육 등을 통해 이들의 가슴에 응어리진 것을 풀어주는 것도 안정적인 다문화가정을 위해 필요한 정책이라고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정에서 양국의 문화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음식을 하더라도 한국 음식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 나라의 음식을 같이 만들어 보고 언어도 배우고 문화도 공부한다면 화목한 가정, 나아가서는 편견 없이 조화로운 우리 사회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경남도민일보 2008-02-12]

[정현수 기자 dino999@ido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