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후 1시40분께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단속반원 6명이 서울 연지동의 한 모텔에 들이닥쳤다. 불법체류자가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단속반원들은 모텔 구석구석을 돌며 종업원들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다. 단속반원들이 8층 복도에 이르러 한 청소원에게 신분증을 요구하자, 객실에서 청소를 하다 단속을 눈치 챈 재중동포 권아무개(51)씨가 황급히 객실 문을 잠갔다. 이를 수상히 여긴 단속반원들이 객실 문을 두드리다 10여분 뒤 마스터키로 문을 따고 들어섰을 때는 권씨가 이미 창문으로 뛰어내린 뒤였다. 권씨는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으나 이날 오후 3시40분께 숨졌다.

박정보 서울 혜화경찰서 형사과장은 “단속반원들의 진술과 현장 상황을 토대로 조사한 결과, 겁을 먹은 권씨가 창문을 통해 도망가려다 떨어진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쪽은 “단속 과정에서 강압적인 행동은 없었다”며 “중국의 유족들이 장례를 수월하게 치를 수 있도록 비자 문제 등에 최대한 협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국 지린성 출신의 동포인 권씨는 딸과 언니 등 중국에 있는 가족과 함께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1999년 산업연수생 비자로 한국을 찾았다. 합법 체류기간이 끝나는 2002년 9월 이전에 고향으로 돌아갈 계획이었으나, 돈을 충분히 모으지 못해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남아 일을 해 왔다.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한 권씨는 한줌 재가 돼 한국을 떠나게 됐다.

인권단체들은 “당국의 대책없는 불법체류자 단속이 이런 사고를 불러왔다”며 17일부터 규탄 농성을 벌일 계획이다. 외국인노동자의 집 대표 김해성 목사는 “단속 과정에서 아무리 적법 절차를 준수한다 하더라도, 늘 발생할 수 있는 돌발변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허울뿐인 적법에 지나지 않는다”며 “정부가 지금처럼 토끼몰이식 단속을 고수할 경우 이런 비극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