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국인 근로자 지원센터에서는 이주 노동자들을 위해 매월 7개국어로 뉴스레터를 발행한다.

설이 코앞에 다가온 25일 오후 4시.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위치한 한국 외국인 근로자 지원센터(이하 지원센터) 1층 사무실. 트럭에 한가득 실려 있는 초콜릿 박스를 사무실로 옮기는 작업이 한창이다. 설을 맞아 오는 30일 열리는 ‘외국인 노동자 및 중국동포 설날 대잔치’에 쓸 물품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4년 말 주민등록상 외국인 인구(합법적인 체류자)는 46만9183명.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에 달한다. 불법체류자 등을 포함하면 외국인은 50만∼6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누구나 들뜨고 행복한 명절이지만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서, 피부색이 달라서, 오히려 소외되기 쉬운 외국인 근로자들. 일년 365일 외국인 근로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지원센터를 찾아 이효정(상담담당)·강지영(교육담당) 간사와 최문철 팀장(홍보담당), 그리고 언어 지원을 위해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중국동포 이광진 씨와 베트남에서 온 흐엉 씨를 만나 국내에서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고충과 바람을 들어봤다.


지원센터를 찾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임금과 관련된 상담. 이효정 간사는 “임금과 관련된 상담이 단연 최고인데, 노동관계법에 대한 상담이 70%를 차지한다”며 “근로자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모르고 영세 사업주도 교육이 제대로 안 돼 있어서 퇴직금 등을 줘야 하는 책임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지원센터에서 처리하는 전화상담은 하루 평균 50여 건. 직접 찾아와서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는 5건 정도지만, 주말에는 내방 상담자들이 20여 명 수준으로 늘어난다. 지난해 11월말까지 총 1만5775건의 상담을 진행했다.

왼쪽 위부터 강지영·최문철·흐엉·이효정·이광진 씨(시계방향).

현재 지원센터에는 중국·몽골·베트남 3국에서 온 ‘언어 지원가’들이 상근 하고 있다. 자국민인 상담원이 상담을 하면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취지에서 지난해 9월부터 이들을 채용했다.

상근 지원가들이 입사한 후 상담을 받으러 오는 외국인도 눈에 띄게 늘었다. 상근 지원가가 없던 지난해 2월부터 8월까지는 베트남인의 상담 건수가 10∼20건 사이였지만 흐엉 씨가 온 후 상담을 하러 찾아오는 베트남 근로자는 지난해 12월 93명에 달했다. 몽골인의 경우도 상근 직원이 없을 때는 상담이 100건 이하인 달이 대부분이었지만 몽골인 어기 씨가 상근 상담을 시작한 후 지난해 12월에는 249건의 상담을 처리했다.

흐엉 씨는 “베트남 근로자들 역시 급여 문제가 대다수고, 사업주가 욕을 하거나 때렸다는 전화도 많다”며 “특히 문화 차이 등으로 인한 오해에서 비롯된 상담도 상당수”라고 말했다.


흐엉 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효정 간사가 ‘문화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사장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전화를 받은 적이 있는데 자초지종을 듣고 보니 사장은 친근감의 표현으로 툭툭 치며 "열심히 하자"고 말한 것 이었다”며 “외국인 근로자들이 우리의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해 생기기 쉬운 오해”라고 말했다.

흐엉 씨는 “자격지심일 수도 있지만, 외국인 근로자들은 사소한 부분에도 쉽게 상처받고 '나를 무시하나'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며 “서로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청소를 하고 있는데 한국인 직원이 자신에게 한국말로 욕을 했다며 항의 전화를 한 베트남인이 있었다”며 “하지만 확인을 해보니 청소를 깨끗이 해달라고 '깨끗이, 깨끗이'라고 말한 것을 ‘새끼’라는 욕으로 잘못 알아듣고 오해한 것 이었다”고 상담 사례를 소개했다.

이광진 씨도 비슷한 상담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언어로 인한 오해는 중국인들도 많은데, '밥 먹었어요'라는 중국어가 ‘츠판러마’인데 이것을 한국어 욕으로 잘못 알아듣고 자신을 때렸다는 하소연도 많이 들었다”고 전했다.

지난해 10월 진행한 '외국인 근로자 어울림 한마당'. 지원센터는 고충 상담은 물론, 한국어 교육, 각종 문화행사 등을 지원한다.

상담 외에 지원센터에서 진행하는 주요 사업은 바로 교육. 한국어를 비롯, 컴퓨터, 태권도, 국악교실을 정규적으로 운영하며, 법률교육, 문화탐방 등도 수시로 진행한다. 지난해 한국어교육을 받은 수강생은 2400여 명에 달했으며, 컴퓨터 1936명, 생활문화 67명 등 모두 4476명이 교육을 받았다.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강지영 간사는 “작년에 한국어 교육생들과 함께 두 차례에 걸쳐 민속촌과 전라도 한옥마을, 김치축제 등을 다녀왔는데 ‘고맙다’는 인사를 정말 많이 받았다”며 “올해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미용이나 베이커리 등 특강을 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 간사는 “최근 자신이 미용실을 운영하는데 이곳에서 미용기술을 가르쳐주고 싶다는 사람들의 전화가 많아 기획하게 된 것”이라며 “힘들게 생활하는 외국인 근로자나 이주 여성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오히려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 최문철 팀장은 “한국에 5년째 거주하고 있는 방글라데시인 근로자가 상담 통역 등 도움을 준다”며 “일하느라 피곤할 텐데도 주말 저녁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뉴스레터 번역 등을 도와주고, 전화로 상담도 도와준다”고 고마워했다.


다섯 명 모두 아직까지 외국인 근로자들을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선입견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최문철 팀장은 “언젠가 부산에서 전화가 온 적이 있는데 술이 잔뜩 취한 남자분이 외국인들 다 내쫒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소리를 지르며 항의를 한 적이 있다”며 “한국에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효정 간사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우리와 함께 가는 가족”이라며 “외국인 근로자와 한국인 사업주 모두 윈-윈 하는 한해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광진 씨는 “일에 지쳐 피곤하더라도 주변에 있는 지원센터 등을 자주 찾아가서 도움을 받고, 생활의 활력을 얻었으면 한다”며 지원센터를 내 집처럼 여기고 찾아와 달라고 말했다.

◆한국 외국인 근로자 지원 센터(www.migrantok.org)= ‘외국인 이주 노동자 대책 협의회’ 등 크고 작은 외국인 근로자 상담 지원 단체는 전국에 150여 곳. 하지만 정부가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곳은 지난 2004년 12월 문을 연 ‘한국 외국인 근로자 지원센터’ 뿐이다. 센터는 한국어·컴퓨터 교육실을 비롯, 상담실, 휴게실, 진료실, 체력 단련실은 물론 노래방까지 갖추고 있어 외국인 근로자들의 상담, 교육, 여가를 책임지는 원스톱 지원센터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합법적인 체류·취업 자격을 가진 외국인 근로자와 이주 결혼 여성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으며, 불법체류자는 출국지원 사항에 대해 상담 등 지원을 해준다. 임금체불, 산업재해 등에 대한 고충상담은 물론, 한국생활 적응교육, 의료지원 등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