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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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제 서울고법이 미등록(불법체류) 이주 노동자라고 하더라도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헌법에 규정된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누구에게나 보장돼야 한다며 불법 체류 외국인이라도 근로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면 노조를 설립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근로기준법 또한 국적에 따른 근로조건 차별대우를 금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의 이번 판결은 노동자의 보편적인 권리를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노동삼권은, 아무런 규제가 없는 상태에선 자본과 노동의 힘 관계가 균형을 이룰 수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권리다. 그리고 이런 보편적인 권리는 국적 따위를 내세워 제약할 수 없다. 이번 판결이 보편 권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판결이 나오자 일부에서는 많은 나라에서 불법 체류자의 노조 설립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거나, 불법을 저지른 이들도 보호하라는 것은 과도하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이런 태도는 보편 권리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비롯된 걸로 보인다. 보편 권리의 보장에 관한 한, 많은 나라가 인정하느냐 여부는 참고사항은 될지언정 기준은 될 수 없다.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것을 지키는 데 굳이 외국 동향을 살필 필요는 없다. 이주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과 불법 체류 문제는 엄연히 구별되는 문제다. 불법 체류를 방치하거나 조장할 수는 없지만, 이것은 별도로 해결해야 한다.
노동부가 노조설립 신고를 받는 과정에서 잘못한 점을 지적한 대목도 눈여겨봐야 한다. 수도권 지역 이주 노동자들은 2005년 4월 노조를 설립해 서울지방노동청에 신고서를 제출했다. 그러자 노동청은 조합원 명단을 제출하라고 요구했고, 노조는 명단 공개가 필수사항이 아니라며 맞섰다. 이에 대해 서울고법은 노동청이 조합원의 체류 자격이 있는지 심사할 권한이 없는데도 법령상 근거 없이 조합원 명부 제출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 대목은 노조설립을 마치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다루는 노동부의 태도에 제동을 거는 의미도 있다. 노동부는 외국인에게만 이런 식이 아니라 자국 노동자에게도 종종 비슷한 태도를 보인 게 사실이다. 노동부는 자신들의 임무가 노동자 관리·통제가 아니라 그들의 권리를 지켜주고 상황을 개선하는 데 힘쓰는 것임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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