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입원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저는 한국에서 치료받는 것을 포기할 생각입니다. 치료비가 너무 비싸서….”(어○○ 씨·네팔)
  “외국인이 가면 진료도 하기 전에 보증금부터 내라고 합니다.”(소○ 씨·방글라데시)
  “병원에 입원했을 때 간호사에게 아프다고 몇 번씩 설명을 해도 못 알아듣고, 그냥 괜찮다고만 하는 거에요. 화도 났지만 어쩔 수 없었죠.”(스○○ 씨·스리랑카)
  
  이주노동자들의 병원치료를 막는 가장 큰 요인은 ‘비싼 진료비’와 ‘언어 소통’ 문제인 것으로 나타났다. 홍승권 서울대병원 의료정보센터 교수(가정의학과)와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들이 지난해 7월24일부터 8월27일까지 수도권과 지방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 541명을 설문조사 하고, 응답자 중 입원 경력 또는 외래경험이 있는 이주노동자 50명을 집단면접조사 한 결과다.
  
  지난 9일 서울대병원 함춘회관에서 열린 ‘외국인력제도 일원화에 따른 이주노동자 보건복지 향상을 위한 공청회’<사진>에서는 설문조사를 통해 드러난 이주노동자들의 보건복지 현황에 대한 토론과 제언이 이어졌다.
  
  2006년 9월 현재 한국에 체류 중인 이주노동자 수는 41만3,000명, 이중 44.8%(18만5,000명)가 미등록이주노동자다. 이주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는 매우 다양하다. △근로계약에 대한 일방적인 무시와 변경 강요 △장기간 임금체불 △최저임금 지급의무 위반 △초장시간 노동 강요 △신분증 불법 압류 △폭행·협박·인격 모독 등이 그렇다.
  
  홍승권 교수 등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이주노동자의 일주일 평균 노동시간은 58시간이며, 주당 60시간 초과 근무하는 이주노동자도 37.5%에 달했다. 또한 ‘직장 내 유해환경’을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51.4%가 ‘소음’을 꼽았다. 그 외 ‘분진’, ‘무거운 물건을 드는 일’, ‘불편한 자세로 일하기’ 등을 유해요소로 꼽았다.
  
  열악한 근로조건과 스트레스 등은 ‘병’을 낳기 마련. 설문에 응한 이주노동자 다섯 명 중 세 명(59.1%)이 ‘한국에 와서 아파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횟수는 ‘2~4번’이 46.7%, 1번 이하가 21.5%로 조사됐다.
  
  ‘아플 때 치료방법’을 묻는 질문에는 ‘통원치료’라는 응답이 33.3%로 가장 많았고, 정기적인 약 복용(23.3%), 치료받지 못함(18.3%), 입원치료(13.3%) 순으로 조사됐다. 의료비 부담은 응답자의 47.5%가 ‘전액 본인부담’이라도 답했고, ‘건강보험+본인부담’이라는 응답이(21.0%)이 뒤를 이었다. ‘의료기관을 이용하는데 어려운 점’으로는 진료비 문제(45.6%)와 언어소통 문제(42.6%)가 1,2위를 차지했다.
  
  설문을 진행한 홍승권 서울대 병원 교수는 “이주노동자들은 의료서비스를 제공받는데 있어 의사 및 간호사와의 의사소통, 경제적 편이, 의사 및 간호사의 친절 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공청회에서는 공공시설 이용을 꺼리는 미등록이주노동자 등을 위해 접근이 용이한 민간시설을 지원하자는 견해도 나왔다. 김용규 가톨릭의대 산업의학과 교수는 “△안전보건교육 △일부 보호구 지원 △안전보건교육 교재 보급 △민간단체활동가 교육 및 교육 이수 시 인센티브 지급 등의 방법으로 이주노동자단체를 지원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 이주노동자 보건관리에 가장 효율적”이라며 “그러나 이주노동자의 합법적인 지위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 같은 방법 역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