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27일,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새벽, 여수의 엑스포 개최가 확정되었다고 한다. “평창의 눈물, 여수에서 닦자.”, "여수에게 두번의 눈물은 없습니다. 2012 세계박람회 유치를 반드시 확신합니다." 월드컵 효과와 맞먹는 엑스포 개최를 한마음으로 기원하던 여수에 ‘눈물’은 없었다. 여수는 지금 환호하고 있다.

여수(麗水)는 그 이름처럼 ‘아름다운 물’의 도시다. 굽이굽이 산과 섬이 바다와 만나고, 산과 섬을 담은 바다의 물빛은 신비하게 아름답다. 그러나 2007년 2월 11일, 여수는 ‘불’과 ‘죽음’의 도시이자, ‘눈물’의 도시이기도 했다. 여수외국인‘보호’소라는 모순의 공간에서 발생한 화재사건으로 10명의 무고한 생명이 쇠창살 안에서 속수무책으로 죽어갔다. 한국의 꿈에 갇혀 ‘불법 사람’으로서 이 세상을 떠난 희생자들은 아마 끝내 여수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유족들은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이국땅을 넘어오며, 처절한 슬픔으로 ‘아름다운 바다’를 대면했을 것이다. 그렇게 아름다움은 슬픔이 되고, 유족들은 담담하게 말했다. “여수(麗水)는 눈물(淚水)을 흘린다.”

당시 변호사로서 유족들을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여수로 간 나도, ‘여수의 눈물’, ‘아름다운 바다’의 ‘슬픔’을 볼 수 있었다. 막막한 슬픔으로 더 아름답고, 더 아프게 여수의 풍경과 사람들이 사무쳤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그 자리에서, 유족들은 화재사건의 현장 공개와 보호소장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며 오열했다. 손에 들린 피켓에는 “빨리 문을 열어라!”(快開門!)라는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유족들은 그렇게 단 세 글자로 화재사건의 모든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유족들이 대신 전하는 ‘빨리 문을 열어 달라!’는 그 고통의 절규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순간에도 쇠창살을 열 수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고 있었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생생하게 듣고, 외치고 있는 그 절규를 왜 당신들은 듣지 못했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리고 외국인에 대한 한국 사회의 닫힌 인식을 엄중하게 질책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절규를 통해 ‘보호소’에 쳐져있는 쇠창살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침해하는 것이 아닌지를 질문했어야 했다. 그리고 ‘보호소’ 바깥에 갇혀 있는 초라한 ‘우리’의 인식을 볼 수 있어야 했다.

피해자들이 슬픔과 분노의 힘으로 다다른 진실은 이렇게 분명한데, 가해자인 ‘우리’사회의 대응은 초라하기만 했다. 이 사건의 사회적 책임과 사회적 기억을 만들어 내려는 노력보다는 배상의 문제를 놓고 줄다리기를 했다. 그리고 서둘러 배상액을 지불하고, 불탄 자리를 리모델링함으로써 문제는 종결되었다. ‘여수 엑스포’라는 ‘침묵의 공모’가 그 신속한 문제 처리의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임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보호 없는 곳을 ‘보호소’라고 부르고, 그 공간은 외딴 섬처럼 우리의 인식 바깥에서 적법절차의 통제를 쉽게 비켜간다. 죽음의 절규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그 곳, 여수외국인보호소에는 여전히 ‘불법사람’들이 쇠창살에 갇혀 있다. 10명의 죽음 이후에도 바뀐 것은 전혀 없었다. 죽음에 대한 배상은 있었지만, 결국 죽음의 의미를 되살려내지는 못했다. ‘보호소’라는 명칭 하에 운영되는 구금시설, 진실한 존재를 가리는 이 모순적인 규정에 놓인 인식의 폭력적 기초를 질문하고 대답하는 근본적인 노력이 존재하지 않는 한, ‘외국인’과 ‘우리’를 갈라놓고 있는 육중한 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2012년 여수는 ‘살아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이라는 주제로 문을 활짝 열고 세계인과 만날 것이다. 자연의 들숨과 날숨이 너무나도 자유로운 이 아름다운 공간을 나는 사랑한다. 그러나 정작 사람들이 연기에 질식한 채 죽어갔다는 역설은 여전히 무겁다. 그리고 ‘문을 열라’는 죽은 자들의 절규가 여전히 메아리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삶과 죽음, 호흡과 질식, 불과 바다의 교차되는 이미지. 나에게 여수는, 아직은 ‘얼음 불꽃’처럼 모순의 공간이고, 차가운 아름다움이다. 여수의 눈물과 웃음, 그 의미가 모두 새롭다.

 정정훈(아름다운재단 ‘공감’ 변호사)